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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출신’ 이원모 385억 신고…올해 퇴직 공직자 재산 1위

행복한 0 4 04.30 03:46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이 재산으로 385억7500만원을 신고한 것으로 26일 공개됐다. 올해 초 퇴직한 공직자 중에서는 재산 총액 1위다. 주진우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은 70억4800만원을 신고했다. 두 사람은 모두 검찰 출신으로 4·10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퇴직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날 고위공직자 수시 재산 등록사항을 공개했다. 이번 공개 대상자는 지난 1월2일부터 2월1일까지 신분이 변동된 고위공직자들이다. 신규 임용 14명, 승진 23명, 퇴직 37명 등 총 82명이다.
4·10총선에 국민의힘 경기 용인갑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이 전 비서관은 재산으로 385억7500만원을 신고했다. 재산 중에서는 배우자 신모씨 소유 주식(271억7900만원)이 재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대형 한방병원 관련 재단 이사장의 자녀인 이 전 비서관 부인은 비상장주인 그린명품제약 주식 2만주, 제이에스디원 주식 2만주를 신고했다. 기존에 보유한 자생바이오 4만주(77억5900만원 상당)는 폐업으로 0주가 됐다. 신씨는 민간인 신분으로 나토 정상회의 출장에 동행해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이 전 비서관은 본인 명의 10억원 상당의 용산구 아파트 분양권, 16억원 상당의 용산구 아파트 전세권도 보유했다. 부인은 노원구 상계동에 상가건물과 21억원 상당의 강남구 오피스텔을 보유했다고 신고했다. 이 전 비서관 부부가 보유한 총 건물 가액은 63억원 정도다.
이 전 비서관은 대통령실 재직 중인 2022년에는 445억9595만원을 재산으로 등록했다. 2023년 3월에는 443억9353만원으로 줄었다. 지난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총선 후보로 등록하면서 신고한 재산은 385억5657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부산 해운대갑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주진우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은 70억4800만원을 신고했다. 서울 압구정 아파트 전세권(부부 공동명의), 경남 사천 일대 토지(본인 명의), 경기 용인 상가(배우자 명의), 본인 예금 8억2900만원 등을 보유했다. 울산 남구에 소유한 대지는 현재가액 18억9600만원으로 신고했다. 장성민 전 미래전략기획관은 48억7900만원을 재산신고했다.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은 본인과 배우자가 보유한 재산은 29억2000만원이었다. 유 위원장은 본인 명의로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19억2500만원) 1채와 충남 당진 일대 토지(1억8300만원)를 신고했다. 배우자는 서초구 오피스텔(1억5200만원) 1채와 방배동 아파트 전세권(12억700만원), 용산구 후암동 기숙사 1채(3억500만원·약 16평) 등을 보유했다. 증권은 장남 명의로 2400만원 상당의 주식(삼성 SDI·한화갤러리아·한화솔루션·현대차) 등을 신고했다. 채무로는 본인과 배우자를 합쳐 총 13억400만원을 신고했다.
이밖에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은 23억8500만원 재산을 신고했다. 최지현 인사비서관이 총 40억2400만원, 전선영 국민공감비서관이 33억원 등을 신고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지지율이 하락하거나 주요 정책 처리를 앞두고 제1야당 대표와 회담을 했다. 대통령들은 이런 회담을 ‘조커’ 같은 최후의 카드로 활용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회담이 성과를 낸 사례는 단 두 번에 불과하다.
특히 모범 사례로 꼽히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의 회담은 2000년에만 7차례 이뤄졌다. 여러 번의 소통 끝에 결과가 나온 셈이다. 기존 사례를 보면 짧은 만남으로 성과를 내는 것이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가장 적극적으로 제1야당 대표와 만난 대통령이다. 임기 중 총 8차례 야당 대표와 회담을 했고, 그 중 7번이 이회창 전 대표였다. 김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을 야당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가려 했다. 2000년 4월24일 회담에서 국민 대통합 정치, ‘영수회담’ 수시 개최 등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11개 의제에 합의했다. 영수회담 수시 개최는 이후 정국을 풀어가는 열쇠가 됐다.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의약분업으로 의료 대란이 벌어지자 2000년 6월 영수회담을 통해 돌파했다. 의약분업을 예정대로 추진하되 약사법을 개정하기로 이 전 대표와 합의하면서 의료대란 출구를 확보했다. 여소야대, 의정 갈등 등의 상황이 현 윤석열 정부와 흡사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야당 대표와 만나 성과를 냈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9월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을 통해 ‘세계 금융위기 공동대처’ 등 7개 항목의 합의를 이뤄냈다. 반면에 그에 앞서 2008년 5월 손학규 당시 통합민주당 대표를 만났을 때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한·미 쇠고기 협상을 앞두고 손 전 대표를 만났다. 이 전 대통령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서 처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손 전 대표는 한·미 쇠고기 협상을 문제 삼아 이 전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했다.
이외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와의 만남은 대부분 소통했다는 명분만 확인하거나 이견만 드러내고 끝나는 자리였다. 1996년 4월18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와 회담했다. 김 전 총재는 오해가 많이 풀렸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별다른 회담 성과나 합의문은 없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두 차례 제1야당 대표를 만났다.
노무현 정부 때도 영수회담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05년 9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만나 대연정을 제안했지만 박 대표가 수락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때는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와의 회담이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함께 만나는 3자 회동만 있었다.
가장 최근에 이뤄진 회담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4월13일이다. 남북정상회담을 2주 앞둔 시기였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와 만났다. 문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야당의 협조를 요청했지만 홍 전 대표는 북핵 폐기, 한·미동맹 강화 등을 강조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나는 일찍이 우리나라 선비들 가운데 약간이라도 도의를 사모했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세속적 우환에 걸리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소이다. (중략) 그들이 미진했던 점은 다름이 아니라 학문이 지극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너무 높여 처신한 데 있고, 시의(時宜)도 헤아리지 못하면서 세상을 경륜(經綸)하는 데 용감했기 때문이오.(<퇴계선생문집>, 권16, ‘기명언에게 답함’) 1559년, 이황이 나아감과 물러남의 도리를 묻는 33세의 젊은 기대승에게 답한 편지의 일부이다. 기대승은 한 해 전 이미 대과에 합격했지만, 스스로 관직에 나아감과 물러섬의 도리에 어둡다고 생각하여 이황에게 그 처신을 물어왔던 터였다.
유학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25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전승되면서 복잡한 이론으로 분화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는 본래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자기 수양(수기)을 통해 개인의 도덕적 인격을 완성하고, 사람들을 다스려(치인) 도덕적 공동체를 완성한다’는 말로 해석되는 ‘수기치인’은 유학자들의 공부 목표를 명확하게 알려준다. 타인을 다스리기 위한 전제가 ‘자기 수양’에 있으며, 모든 유학자들은 이를 선결조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의 강조이다. 학문이 지극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너무 높여 처신했던 사람들이라는 이황의 평가는 이러한 기본 조건도 갖추지 못했던 사람들을 향했다.
그러나 자기 수양이라는 전제를 충족했다 해도, 모두 벼슬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 수양 여부와 상관없이 ‘시의(時宜)’도 판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의’는 ‘때에 맞는 적절성’이다. 즉 관직에 진출하려는 그때가 ‘유학의 도, 즉 도덕공동체 구현이 가능한 때’인지 판단해서 출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전통시대의 경우 대체로 왕이 무도하거나 권력이 부패했다면, 시의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도덕공동체 구현’이라는 목표를 실현할 수 없으므로, 이를 알면서도 굳이 출사하는 사람들은 출사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이었다. 이황은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시의도 헤아리지 못하면서 세상을 경륜하는 데만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유학 이론에 따르면, 유학자의 관직 진출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유학자가 반드시 나아가야 할 실천의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 현재 관점에서 봐도, 능력 있는 사람이 관료로 진출하여 공동의 이익을 위해 헌신한다면, 국가공동체에 이보다 더 큰 이익도 없다. 다만 유학은 개인이 준비되지 않았거나, 시대가 준비된 개인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엔 ‘물러서는 게 미덕’이라고 가르쳤다. 조선사회에서 왕이 무도할 때 관직을 버리고 자기 수양에 매진했던 처사(處士)들이 존경받았던 이유이다. 맹자의 말에 따르면 옛 현인들은 벼슬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게 아니라, 올바른 도리에 따라 벼슬하지 않는 것을 싫어했다.(<맹자>, ‘등문공하’)
언론과 미디어
점진적 방법으로 이뤄진 변혁
왕건의 유언과 ‘공심’
그러므로 조정에 어진 관료가 많다는 말은 백성을 어질게 다스리도록 하는 어진 왕이 있다는 의미다. ‘시의’를 만드는 일은 왕의 몫이었고, 자기 수양 조건을 갖춘 유학자라면 왕이 어진 정치를 펴는지 보고 출사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조정에 어진 이가 없다면,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하는 사람 역시 왕이다. 어진 이들로 하여금 물러나는 게 명예롭도록 만든 사람이 왕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유학이 아닌 민주주의 이념에 기반한 국가이다. 그러나 도덕과 수양이라는 말을 합리와 능력이라는 말로 바꾸면 유학의 이 같은 생각은 현재도 유효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 논의가 유효하다고 판단되면, 어질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맹자의 다음 경고 역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어진 사람을 등용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지, 영토를 빼앗기는 데만 그치겠는가?(<맹자>, ‘고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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