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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물떼새 돌아왔는데…세종보 재가동은 ‘생태학살’

행복한 0 5 05.08 11:37
저기 물떼새 우는 소리 들리죠. 저쪽으로 가보죠.
지난달 29일 세종시 합강공원 인근에서 고무보트에 오른 황성아 세종환경운동연합 대표의 말이 끝나자 물떼새 한 쌍이 물 위를 날아올랐다. 황 대표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노를 저어 도착한 하중도(하천 중간에 퇴적물이 쌓여 생긴 섬)에는 너른 모래·자갈톱이 펼쳐져 있었다.
합강습지보호지역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내리고 잠시 후 탄성이 들려왔다. 여기 알이 있네요.
동그랗게 자갈로 둘린 둥지 안에 3㎝ 정도 크기의 얼룩덜룩한 타원형 새알 하나가 놓여 있었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한 흰목물떼새 알이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합강습지는 하천 폭이 넓고 유속이 느려 모래톱과 자갈톱이 발달해 있다며 물떼새들에게 최고의 서식처이자 번식처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합강습지보호지역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은 이날 물떼새 번식지 조사를 위해 금강을 찾았다. 물떼새는 주로 강가의 모래밭이나 자갈밭에서 번식한다. 물떼새 중에서도 희귀종에 속하는 흰목물떼새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이 멸종위기종 적색목록으로 분류했다. 하천 준설 등으로 서식지를 잃어가면서 개체수가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흰목물떼새가 합강 지역을 중심으로 금강에서 다시 발견된 건 최근의 일이다. 4대강 사업으로 합강습지 아래에 세종보가 설치된 후 모래톱 등이 사라지자 자취를 감췄던 흰목물떼새는 2018년 세종보 수문 개방으로 서식 공간이 회복되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처장은 세종보 상류 모래톱 2곳과 하중도 2곳에서만 물떼새 성체 28개체와 둥지 23개를 확인했고, 흰목물떼새 알 2개와 꼬마물떼새 알 1개도 발견했다며 곧 본격적인 산란기인데 세종보가 재가동되면 물떼새 둥지와 알은 모두 수장된다. 이는 생태학살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보 가동이 중단됐던 금강에선 보를 재가동할 준비가 한창이다. 합강습지에서 7㎞ 정도 떨어진 세종보에서는 이날도 보 수리에 동원된 굴착기와 트럭들이 바삐 오갔다.
금강에는 4대강 사업으로 보 3개가 설치됐다. 2012년 6월 준공된 세종보는 2017년까지 가동됐다가 멈췄다. 이후 공주보와 백제보도 순차적으로 수문을 열면서 금강에는 보 가동 이후 사라졌던 생명체들이 되돌아왔다.
환경부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은 2021년 9월 보 개방 전후 4년간의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생태계 건강성 개선을 확인했다는 자료를 내놨다. 특히 흰목물떼새는 금강의 생태적 건강성 회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종’ 중 하나였다.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는 환경부 자료를 토대로 2021년 1월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을 마련해 세종·공주보 해체와 백제보 상시 개방을 결정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정권이 교체된 이후 이 결정을 뒤집었고, 환경부는 올해 상반기 안에 보 가동을 정상화할 계획이다.
87개 시민·환경단체로 구성된 ‘보 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은 지난달 30일부터 세종보 상류 한두리대교 아래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임도훈 시민행동 간사는 5월 중순 이후 보 재가동 가능성이 있다며 물떼새 둥지가 수몰되고 금강은 다시 녹조와 악취가 가득한 강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물이 차면 보트를 띄워서라도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22대 총선 뒤풀이가 요란한 가운데 무감하게 잊히는 정당이 있다. 진보정당 운동의 본령인 정의당이다. 지난주 리얼미터 정기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은 이름 없는 ‘기타 정당’으로 분류될 만큼 미미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진보 집권’을 꿈꾼 게 엊그제인데, 믿기지 않는 반전이다. 총선 일주일 전 117명의 지식인들이 녹색정의당 지지를 선언하면서 녹색정의당이 없는 한국 정치는 상상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여기서 녹색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대체해도 무방할 터이다. 그 상상할 수 없던 것이 현실이 됐다.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이 의석 확보에 실패해 원외정당으로 밀려났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을 기점으로 하면, 진보정당 운동이 20년에 걸친 여정 끝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20년 진보정치 역사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양경규 정의당 의원). 저무는 한 시대를 되짚고, 정의당의 실패를 복기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시작할’ 씨앗을 찾을 수 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0석을 확보해 단숨에 제3당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보수 일변의 국회에 노동자 정치세력화 기수인 민주노동당이 입성한 것이다. 당사에서 국회까지 걸어오는 데 5분이 걸렸지만 노동자의 국회 입성에는 50년이 걸렸다(당시 노회찬 의원). 반세기에 걸쳐 굳어져온 좌파 부재의 한국 정치 지형을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민주노동당이 전복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국회 입성을 역사적 사건으로 매김하는 이유이다.
원내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비정규직 문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부유세 등 원내 진보정당의 의제와 제안이 시대정신이 되었다. 이렇게 진보정당을 통해 한국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모아져 한때 국회 의석 13석, 당 지지율 20%, 대선 득표 200만표에 달하던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 진보적 의제를 정치권에 투영하기 위해 분투할 때,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권리 옹호를 위해 헌신할 때 이룩할 수 있었던 성취다.
그 빛나던 시절을 아득한 과거로 밀어내는, 참담한 좌절이 너무 빨리 왔다.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은 의석을 단 1석도 얻지 못해 원외로 밀려났다. 비례 정당득표율은 정당 해산 기준을 간신히 넘은 2.14%에 머물러 의석을 배정받지 못했다. 진보정당의 얼굴인 심상정 의원은 지역구에서 2등도 아닌 3등으로 낙선했다. 진보 유권자들로부터도 철저히 외면받은 최악의 결과다. 22대 총선에서 진짜 망한 정당은 녹색정의당이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내외(內外)의 여러 가지 패인이 거론된다. 우선 정체성 혼란, 민주당과의 관계에서 ‘2중대’ ‘배신자’ 프레임 사이 갈팡질팡한 태도, 선거 노선을 둘러싼 분열, 노회찬·심상정 이후 인물 부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외인(外因)으로는 모든 의제를 집어삼킨 압도적 정권심판론, 위성정당, ‘지민비조’를 내세운 조국혁신당 돌풍 등이 지목된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0석 사태’를 초래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진보정당으로서 선명하지 못한 정체성이 치명적이었다. 언제부턴가 노동 중심성과 현장을 방기하고, 과도한 정체성 정치와 여의도 고공정치에 치중하면서 노선이 흐리멍덩해졌다. 오죽하면 민주당보다 덜 진보정당이란 소리를 들었을까 싶다. 선거를 앞두고 비례 1번 국회의원이 탈당해 반페미니즘 보수정당으로 넘어갔다. ‘못 믿을 정당’이란 이미지가 두텁게 쌓였다.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당연한 얘기지만 조국혁신당이 정의당을 대체할 순 없다. 정의당이 원외로 밀려났지만, 진보정치의 가치와 필요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이대로’ 3년은 너무 막막하다
‘조국 사태’와 ‘조국혁신당 현상’ 사이
누가 정권심판론을 잠재우나
총선 기간에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단체로 녹색정의당에 입당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누군가는 들어줘야 하잖아요. 녹색정의당은 꼭 필요한 정당입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처럼 정의당이 필요한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여전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대변자 역할을 할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광야로 나온 정의당 앞에 놓인 환경은 척박하다. 몰락에 가까운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총선 득표율이 가리키는 바가 있다. 재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고 노회찬 의원의 ‘6411번 버스 연설’에 답이 들어 있다. 이제 여의도를 벗어나 밑으로, 현장으로, 민중 속으로 내려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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